중세 철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준 로마 시대의 철학자가 두 명 있는데 아우구스티누스와 보에티우스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최대의 교부로 간주해지고 있다. 그는 주로 신학자이자 기도문의 작자였지만 그의 저작의 상당수는 철학적이다. 그의 주제는 진리, 신, 사람의 영혼, 역사의 의미, 국가, 죄 그리고 구원이다. 1000년에 걸쳐서, 신학이나 철학에 관한 라틴어의 저작으로 그의 저작을 인용하거나 그의 권위에 의지하고 있지 않은 것은 거의 없었다. 아우구스티누스 저작 안에는 데카르트와 같은 근대 철학에 영향을 미친 것도 있다.
아니키우스 만리우스 세웨리누스 보에티우스 (480년~525년)는 로마에서 고대부터 계속되는 영향력이 강한 집에서 태어난 기독교 철학자이다. 그는 510년에 동고트 왕국에서 집정관이 되었다. 그의 초기 중세 철학에의 영향이 주목받아 중세 초기 철학이 '보에티우스의 시대'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의 모든 저작을 원전의 고대그리스어로부터 라틴어로 번역하려고 하였고 실제로 '명제론'이나 '범주론' 등 아리스토텔레스의 많은 논리학 관련의 저작을 번역했다. 또한, 그러한 작품과 '범주론'의 주석인 포르피리오스의 '이사고게'에 대한 주석서를 저술했다. 이것이 중세 서방 세계에 보편 논쟁을 소개했다.
그들 이후의 중세 초기는 철학이 쇠미했던 시대로 여겨져 일부의 유명한 인물의 것을 제외하면 이 시대의 철학은 자주 전문가들로조차 무시해 왔다. 그 원인은 이 시대의 사상가가 철학을 주제로써 집필하는 것이 없고, 그들의 철학적 사색은 전적으로 신학, 논리학, 문법학, 자연학 등 개별적인 주제를 가진 논문에서 발견된다.
'보편으로서의 사람' 히르데가르트 폰 빈겐의 '신의 업의 책' (1165년)의 채식 서방에서의 연구 활동의 최초 주목해야 할 부흥은 카롤루스 대제가 피사의 피에트로나 알퀸(Alcuin of York)의 조언받아 잉글랜드나 아일랜드 (유럽 대륙에서의 혼란을 피해 학자들이 아일랜드에 멀리 도망쳐, 거기서 라틴·그리스 문화의 전통을 수호했다는 설이 역사가들에 의해서 주창된 적도 있다[17])의 학자를 초빙하고, 또 787년의 칙령에 의해서 제국 내의 모든 수도원에 학교를 병설시켰을 무렵에 시작한다. 이러한 학교 (schola)는 스콜라 철학(Scholasticism)의 이름의 유래가 되고 있으며, 또한 중세의 연구 활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 시기의 철학적 활동 중에서는 고대의 저작을 필사하는 것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알퀸과 그의 제자들이 논의한 내용을 기록한 일련의 자료안의 몇 개인가는 완전하게 과거 작품의 초록·발췌에 지나지 않는다.
7세기경부터 2세기간에 걸쳐서 아일랜드인이 종종 유럽 대륙에 이주해 오고 있었다. 그 대부분은 수도사로, 각지에 수도원을 세웠다. 이 조류 중에서 9세기가 되면 그들 중에 탁월한 학식을 가진 인물이 나타났다. 그중에서도 마르티우스 스코트스, 세두리우스 스코트스, 그리고 다음에 말하는 요하네스 스코투스 에리우게나의 세 명의 스코트스가 가장 큰 실적을 남겼다 (당시 스코트스, 스콧인은 아일랜드인을 가리킨다).
요하네스 스코투스 에리우게나 (815년~877년)는 알퀸의 뒤를 이어 궁정 학교장이 된 인물로, 아일랜드 출신의 신학자로 신플라톤주의 철학자이다. 그는 당시, 사도의 시대에 살았다고 생각되고 있던 가짜 디오니시오스 아레오파기테스의 저작을 번역·주석했다. 그는 이 역서 헌정의 말에서 '에리우게나'로 자칭했지만, 이는 '아일랜드 귀족의 자손'이라는 의미의 그리스어이다. 그 밖에 에리우게나가 번역한 것으로서 고백자 막시무스의 '안비그아' 및 '타라시오스에 대한 물음', 니사의 그레고리우스의 '인간 창조론' 등이 있다. 에리우게나의 자기 저서 '자연의 구분에 대해'(라틴어: De divisione naturae)는 내용으로서는 철학서라고 말하는 것보다도 신학서이지만, 그 분야의 선배보다 아득하게 체계적·철저하게 신플라톤주의와 기독교를 통합하고 있어, 그후 중세 철학을 방향 지었다. 에리우게나의 저작은 그 생전에는 무시되는 경향에 있었지만 12세기의 철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는 이해가 통속적으로 퍼지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에리우게나의 같은 세대나 바로 아래의 세대의 몇 사람이나의 인물이 저서 중에서 '자연의 구분에 대해'를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있어, 반대로 12세기에는 에리우게나를 열애하는 사람이 조금 있지만, 눈에 띈 사상가 중에서 에리우게나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은 없었다.
이 시기에는 신이 어떤 사람에게는 구원하는 것과 반대로 어떤 사람에게는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운명을 결정하고 있는지 어떤지에 대한 교의상의 논쟁이 일어났다. 신학자·문법가·시인의 오르베의 고테스칼쿠스(영어: Gottschalk of Orbais, 라틴어: Godescalc, Gotteschalchus, 805년경- 866년/869년)가 이 신에 의할 예정에는 2종류 있다는 학설의 창도자 이며, 그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술을 근거로써 자신의 설을 주장했다.
에리우게나는 이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서 불려왔다. 그의 저서 '예정론 De praedesinatione'에 의하면, 신의 실체는 하나이기 때문에 신의 실체의 일부일 예정이나 예지가 이중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하고 있다. 또, 이 '신에 의할 예정'의 문제는 원래 '예정'이라고 불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그는 말한다. 왜냐하면, 신은 시간 중이 아니라 영원 동안에 존재하고 있으므로, '예정'과 같은 시간적 앞뒤성을 상기시키는 방법 말은 부적절하다.
한층 더 에리우게나는, 신이 악을 창조한 것은 아닌 것을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 악은 선성의 결여라고 규정한다는, 신플라톤주의에 영향을 받은 보에티우스나 아우구스티누스의 설명을 인용하고, 그 위에 자신의 이론을 구축했다.
그러나 그 이론은 독자성이 지나치고 극단적이었기 때문에 이단시 되었다.
'인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양철학 : 중세 철학 - 역사(4) 중세 전성기, 토마스 아퀴나스 (0) | 2022.11.23 |
---|---|
서양철학 : 중세 철학 - 역사(3) (0) | 2022.11.22 |
서양철학 : 중세 철학 - 특징, 역사(1) (0) | 2022.11.21 |
고대 그리스 철학자 - 아리스토텔레(Aristotle, Αριστοτέλης) (4) (0) | 2022.11.11 |
고대 그리스 철학자 - 아리스토텔레(Aristotle, Αριστοτέλης) (3) (0) | 2022.11.09 |